컬러링을 바꾸라는 사람들.

 

내 취향에 맞게 선택한 컬러링.

 

사람들에게는 거북한가 보다.

 

" 그 나이에... "

" 생각 보다 젊으시네요... "

" 이외다 " 등등이 나에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지인들은

 

" 노인네..... "

" 애늙은이..... "

" 니가 그러면 그렇지......"

" 취향 좀 바꿔라. 전화걸 때 마다 깜짝 놀란다니까"

" 듣기 안 좋다. "

" 이미지 망치겠다" 등등이다.

 

 이런 저런 말을 듣다보니 컬러링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게 된다.

 

 '사실 컬러링은 내가 듣는 음악이 아닌

 전화 건 상대방이 듣는 음악이니까.....

 남을 배려한다면 바꿔야 겠지' 라는 생각.

 

 그러면서 가슴한켠에 느껴지는 불쾌감.

 

 '팝''가요''락' 등등은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젊어보이니까 괜찮고

 

 내 컬러링으로 선택한

 가야금 연주는 나이들어 보이고,

 이미지를 망치는 것이며,

 전화 걸 때 깜짝 놀라게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입가에 지어지는 비소.

 

 전통적인 것은 고리타분해 보인다. 라는 생각에 대한 답답함.

 자국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이상하게 보는 것에 대한 불쾌감.

 

 

 하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려 해도

 가슴 한켠에 일어나는 서글픔 때문에 가슴 아프다.

 

 

 난 우리나라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국이 가진 역사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전통은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아닌......

 '아름답다' '멋지다' 등의 찬사를 받기를 원한다.

 

 

 자국의 역사문화종교를 천시 여기는 나라는

 미래에 희망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종족적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것은.

 자국의 훌륭한 '역사문화사상종교'이니까 말이다.

 

 그런면에서....

 현대화, 재개발을 위해 훌륭한 문화유산들을 허물어 버리는

 사고방식에 대해 조소를 금할 수 없다.

 

이상 횡설수설 끝.

by 龍淵 | 2008/10/21 17:22 | 트랙백 | 덧글(1)

왜 한국 꼴통우익들은 한국사 왜곡을 하는가?

한국의 우익은 기존 다른나라의 '우익'과 다른 성향을 가집니다.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 해당 집단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러한, 한국의 우익들에게 민족의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익들 대다수가 친일파 세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민족해체론과 역사해체론등을 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한경우 국가해체론까지 언급하기도 합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등등 )

 
 왜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주장하는 것일까요?
 뻔히 국민들이 싫어하고 '욕먹을 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은 바로
대다수 한국 우익의 출발점이 민족배반자, 즉 '친일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역사해체론과 역사해체론이 힘을 얻고 한국을 지배하면 그들의 조상은 더이상 '민족배반자' '친일파' 등으로 불리지 않게 되고, 시류에 맞는 흐름등으로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됩니다. 한 마디로, 한국에 민족과 역사가 사라지게 되면 선조가 한 일이 부끄럽거나, 나쁜 짓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살아간 '한 부분'으로 승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뉴또라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 뉴또라이의 민족해체론, 역사해체론적 측면은 '친일' 세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가 유대인, 천주교, 개신교등에서 인정하는 '천지창조를 포함한 역사'보다 길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밖의 도용 사건 등 많지만 우선 생략)

 


 한국 우익들은 해방 이후, 한국 역사 말살 왜곡을 자행합니다.

1. 근현대사  왜곡입니다.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뉴또라이들의 일정시대에 대한 찬사가 아닌 독립운동사의 말살, 왜곡 일부분에 대해 쓰겠습니다.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분들이 누구일까요?

 아마, '김 구' ' 유관순' '안창호' 등이 대표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위대한 일을 했고, 모든 재산을 털어가며, 대를 물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대종교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바로, 그들이 '대종교도들이기 때문이고, 한국 우익들의 잘못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글학회 운동을 비롯하여, 만주지방에서 이루어진 무장독립투쟁, 그 외의 다수의 독립운동들은 대종교도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대종교 역사 = 독립운동사, 혹은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대종교 역사와 같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종교도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대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은 대종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무속까지 '종교'로 인정 하던 일제는 대종교만은 종교로 인정 하지 않습니다.

 인정하면, 한국의 독립운동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이 대종교는 계속된 독립운동으로 교주를 수차례 잃고 해방직전 일제에 의해, 지도자 태반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 후, 지도자의 부재와 잘못된 경전해석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홍암 나철편을 보세요 -

 
 한국식 우익, 일명 수구 꼴통들에게는 이러한 대종교의 독립운동사는 그들과 대치점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자랑스러운 대종교의 독립운동사는 말살되고 맙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일부만 남게 됩니다.
  



2. 두번째는 한국 고대사 왜곡입니다. 일제는 한국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한국의 역사문화를 왜곡합니다.

 그리고 그 바톤을 조선사편수회의 ‘이병도’가 맡게 되죠. 그는 한국의 역사왜곡과 말살에 힘 쓴 이마니시 류우의 역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아 두계(이병도)학파로 이어져 발전됩니다.

 - 심하게 말하면 일제식민지 사학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두계학파가 현 한국의 역사학계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사 복원은 어렵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한국 고대사는 사라지게 되게 됩니다.

그 결과 약 1만년에 다다르는(어쩌면 더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단군조선까지도 고려시대 때 조작되어 만들어진 신화라 하며 매도당하고, 역사초기부터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2,300~400년으로 쪼그라들게 됩니다. (학계에서는 단군조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민족해체론자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등까지 부정합니다.

민족이란 개념은 근대 서구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에 한민족이 아니며, 한민족의 역사로 보면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이 논리 전개는 뉴 또라이들과 우리나라 우익들이 답습하고 확산시키고 있는 측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된 역사가 사실이냐? 당연히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배울 수 없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가 모토인

 "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 "라는 역사문화서에 의하면

 약 8천년 전의 한국인들은 비단옷을 입었다 합니다. 이를 입증하는 옥누에 또한 발굴되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런데, 우리의 단군할아버지 초상화는 풀 옷을 입고 있죠.

 단군조선의 후계왕조는 위만 조선이 아니라, ‘부여’이고 한나라로부터 한나라 황제가 죽었을 때, 착용할 수 있는 수의인 옥갑을 상납 받았을 만큼 강대국이었다면 믿어지십니까?

 이 부여사는 턱없이 축소되어 그냥 자그마한 부족국가 정도로 배우고 있습니다.

 고구려 최초의 정복군주는 광개토호태왕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초의 정복군주라 알고 있죠. 또, 백제사는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아십니까? 백제의 자랑스러운 역사 중 상당수는 부정당하고 그냥 간략하게 ‘진출’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제강점기의 한국은 그냥, 일본의 진출일 뿐입니다. 제국주의 식민지들 또한  ‘진출’ 에 불과한 것이고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언어가 다르다하며,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부정당했던, 말갈 여진족은 한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고 중국 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에 대한 기록이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 이 한국의 잃어버린 고유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역사문화에 대한 내용들은 강의 노트, 신시단군조선사연구, 단군조선영토연구, 한사군실제위치 연구, 부여고구려백제사연구, 기자위만조선연구, 고조선과 한사군 위치비정연구등에서 추출된 내용입니다. )

 한국의 우익들은 한국사 고대사를 부정합니다. 그들의 뿌리가 조선사 편수회에서 나온 ‘두계학파’ or '식민지 사학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연구결과와 상반된 연구결과가 나오면,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환단고기류의 위서로 몰아버립니다. 단 한글자도 인용하지 않았어도 말이지요.

 

 때문에,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가 복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역사문화연구회 김종서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사는 약 1만년이라 합니다(여태까지 발굴된 결과에 의하면, 어쩌면 그것보다 더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세계 4대문명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문명을 한국인이 만든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국가는 단군조선이 아닌, 환웅천왕의 신시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우익들이 각계 각층 고위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과 반대한 학설을 내세우면, 강단에 설 자리도 없고, 취업조차 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은 뒤틀려져서 ‘정의’를 찾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이게 다. 한국 우익들의 ‘뿌리’가 잘못 되었기 때문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선조의 잘못을 부정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가 아닌 '부패'와 '비양심' 을 택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키울 때, 썩은 뿌리를 도려내지 않으면, 나무 전체가 썩어 죽어버리게 됩니다.

 현재, 한국의 상태가 그런 듯 합니다.

 광복 이후, 뽑혀지지 않고 그대로 부와 명예를 걸머쥐고 한국식 우익이 되어버린

 민족, 아니 종족 배반자들과, 그들의 후손, 그리고.... 한국식 우익에 편승한 사람들에 의하여.

by 龍淵 | 2008/06/20 12:51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2MB] 중국에 넘겨 준 것은 무엇인가?

다음은 막판대장님 글을 퍼온 것입니다.

 황해를 내해로’ 한·중, 경제 협력 강화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내륙 개발에 한국기업이 적극 참여하길 기대한다며 양국간 경제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황해를 내해로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이석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이명박 대통령은 한중 두나라의 경제 협력을 양적인 협력에서 고도의 질적 협력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륙 개발에 적극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녹취> 이명박 대통령 : "실용의 시대를 맞아 더욱 적극적인 역내 경제협력으로 `황해를 내해'로 만들어 갑시다."

또 한중 FTA는 두나라 간에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동북아 경제권의 발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견해도 제시했습니다.

이와관련해 청와대측은 한중 FTA는 아직 검토 단계로 우리 농어촌과 중소기업을 보호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이석호입니다.

http://news.kbs.co.kr/article/politics/200805/20080529/1568919.html

 

 

그루터기추억님 글 퍼옵니다.


그루터기추억
황해(Yellow Sea)란 우리나라 입장에서 바라본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바다의 명칭이며, 내해(Inner Sea)란 한 국가의 내부에 있는 바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황해가 내해가 된다는 것은 중국대륙과 한반도 모두가 우리 대한민국 땅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가 중국 땅일 때만 가능한 명칭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동해의 일본해 표기를 주장했듯이, 중국은 황해의 내해표기를 주장했었습니다. 이는 한반도가 중국 땅이라는 암묵적인 표현입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북한 땅을 접수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펼친 것입니다. 그런데 2MB의 내해 발언은 이러한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며, 장차 한반도를 중국에 내어줄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12:57
그루터기추억
추가로 우리는 줄기차게 동해(East Sea)와 서해(West Sea) 표기를 주장했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로 서해표기를 황해표기로 양보했었는데, 이젠 아주 내해로 표기해 주겠다고 해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외교적인 신중한 고려가 부족한 발언입니다. 13:01

 이 기사는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그 경우, 또 나올 것은 '오해'란 말일듯 하다.

 아마... 중국과 한국이 하나의 국가처럼 경제적 행위를 하자는 뜻에서 

 황해를 내해로 만들어가자는 말을 했다고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황해를 내해로'란 말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순수하게 '경제적' 의미로 받아들여 해석할 수도 있고  (그러나 이경우도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것도 아니고, 왜 '명칭'을 가지고 그런행위를 하냐는 것이다.  명칭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 이상 절대 나올 수 없는 반국가적 행위이자, 심하변 '매국'이라 질타 받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그루터기추억님의 말처럼, 암묵적인 중국에 속한 영해로 인정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점차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통일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설마 티베트 처럼 되자는 말인가?)
  
  설마 정말,  '황해를 내해로'란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중요성을 대통령은 몰랐던 것일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오후 12시부터, 광화문(맞나?)에서 시위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하나, 둘 모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중국 나갔을 때, 고시하고

책임자 잘라버린다는...

네티즌들의 시나리오가 맞았나 봅니다.

 

현재, 4시에 고시한다는 것과

아고라 분 중, 민X당에 전화 걸었더니

2시로 고시 예정되었다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언제 고시하던 상관없이....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모두 화이팅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력 투쟁은 안됩니다.

그게 정부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자

정부가 '미치도록' 원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던진다던가, 폭력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분 있으면

막아주시고, 잡아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미친 정부'에게서 살아남았으면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리고, 이제는 이명박 탄핵이 아닌

불명예 퇴진, 하야를 위해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by 龍淵 | 2008/05/29 13:27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16)

(펌)온전한 형태 청동기 인골 국내 첫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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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기사입력 2008.05.27 16:45




대구 달성군 평촌리 일대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석관묘와 인골.
청동기시대 집단 석관묘와 인골(人骨), 부장품이 대구 달성군에서 발굴됐다. 특히 청동기시대 인골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은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달성2차산업단지 지원도로 건설용지에서 청동기시대 석관묘 21기, 옹관묘 3기, 주거지 5기를 비롯해 청동기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발굴됐다고 27일 밝혔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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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龍淵 | 2008/05/27 18:58 | 역사 뉴스 | 트랙백 | 덧글(0)

고려장은 존재 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 문화' 라는 역사 문화서 에 의하면

 한국의 고유 문화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려장'과 대비되는 '효도 문화'라 합니다.

'고려장'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앞서,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 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한국의 효도 문화에 대한 것은 간단하게 차례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 17절 한국 고유의 효도문화

1. 고죽국 효자이야기

2. 고구려의 효자이야기

 1) 해명태자  2) 호동왕자

3. 신라의 효자이야기

 1) 효녀 지은  2) 효자 향덕  3) 효자 성각  4) 효자 거진  5) 효자 손순 부부

4. 고려의 효자 이야기

 1) 효자 최루백  2) 효자 위초  3) 효자 문충  4) 효자 윤구생  5) 고려 성종의 효자포상

5. 맺음말

 

그리고 이제 고려장 이야기 입니다.

제 18절. 조작된 고려장 이야기

1. 조작된 고려장 이야기 1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 두 '고려장' 이야기(지게, 나뭇가지)에 대해 소개하고 이러한 고려장에 관한 기록은 고구려, 고려 관련 어떤 기록에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일본의 "만엽집고의"에 인용된 중국의 "효자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국의 효자전 기록이 각색되어 고구려, 고려에서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이야기로 조작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조작된 고려장 이야기 2

 유명한 늙은 아버지가 문제를 푼 대신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 또한 유명하죠. 이 이야기에 대한 기록 또한 고려나 고구려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유사한 내용이 "잡보장경" '기로국편'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두 이야기를 대비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면, 정말 유사하죠. 이 기록국의 이야기가 고구려(고려)에 있었던 이야기처럼 조작되었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3. 조작된 고려장 이야기 3

늙은 부모를 산채로 매장하는 '산매장' 풍습에 관한 고려장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석관묘(돌널무덤)을 도굴할 때 무덤 안에 발굴된 식기, 수저 등의 유물을 근거로 확산 시킨 이야기라 합니다.

 무덤 안에 청동 수저, 식기 등을 비롯한 값 비싼 부장품을 넣는 문화는 이미 9천년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장례풍습이고, 영혼이 그 부장품을 사용하도록 함께 묻은 것이라 말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여 송국리 돌널부덤 부장품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일제가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석관묘(돌널무덤)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만들고 확산시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고국원왕의 효도로 본 고려장

 전연의 모용원진과 고국원왕의 이야기 입니다.

 342년 선비족 국가인 전연의 왕 모용황이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능을 파서 유골을 싣고, 왕의 어머니를 포로로 잡아가자, 고국원왕이 다음해에 진기한 보물 수천을 전연에 보내고 아버지 미천왕의 유골을 되찾아 왔다는 것과 전연에 태자를 인질로 보내고 많은 재물을 주고 왕의 어머니를 귀국 시켰다는 기록입니다.

어머니를 귀국 시켰을 때 고국원왕의 나이는 52세 전후였고, 왕의 어머니의 나이는 최소 70세 전후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고구려에 고려장이 있었다면, 왕의 어머니는 이미 고려장을 할 나이가 지났거나 고려장할 나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려장할 어머니를 되찾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인 태자를 대신 적국에 인질로 보냈을리도 만무합니다.

 또,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버리거나 산 채로 매장하는 고려장이 실제로 있었다면, 죽은 사람의 시신을 소중히 여겼을리도 없습니다. 이미 땅소겡 묻힌 지 오래 된 아버지의 유골을 되찾아오기 위하여 진기한 보물 수천을 적국에 갖다 주었을 리도 없다고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에서 김종서 박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5. 고구려의 장례제도

 고구려인들이 평소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다는 것과, 장례제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죽은 자를 장사지낼때는 관과 부장품을 묻기 위한 곽은 있으나 시체를 담는 궤인 관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 부모상과 남편상은 3년 형제 상은 3개월로 하고, 장례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울고(이 부분이 유교 도입후의 변화입니다), 매장할 때는 북을 치고 춤을 추는 등 풍악을 울리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전송한다.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유교 도입 전후 고구려 장례법의 변화와 고대인들의 사후 세계관과 '천손 사상'에 대해 김종서 박사가 설명하고 있으나 생략하겠습니다. 

 마무리는 노인의 경륜을 존중하고 노인 공경하는 문화 즉, '삼로제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끝을 냅니다.

 

 6. 고려의 장례제도

 고려장과 정 반대기록이 존재합니다.

 오복제도와 나라에서 금한 법령(금령)에 대한 기록입니다.

 금령의 내용은 부모의 상을 당하고 슬픔을 잊고 풍류를 잡히며 잡된 놀이를 하면 징역 1년형에 처하고, 상복을 벗고 보통 평상복을 입으면 징역 3년형에 처하며, 상을 숨기고 발상하지 않으면 2천리 유배형에 처하고, 묘를 직접 지키기 않고 노복으로써 대신하게 한 것도 죄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려시대에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버리는 사악한 법이나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저자인 김종서 박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7. 고려장 이야기의 조작과 확산

여기서는 고려왕조를 무너트린 조선왕조가

고려왕조를 사악한 왕조였다 헐뜯기 위하여 만들어냈을 것으로 보이는

중상모략, 유언비어가 시중에 널리 유포되었다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고

일정 시대에 한국인에게 역사문화적 열등감을 심어주어 영원히 한국을 식민지배 하려고 한 일제가, 한국인이 부모를 산채로 묻거나 내버렸던 야만인이라 폄하시키기 위해 확대 재생산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와 일본인이 발행한 조선동화집에 '부모를 버린 사내' 등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고려 시대 무덤에서 귀금속, 청동기, 도자기 등의 값비싼 부장품등을 사람을 산채로 묻었던 증거라 왜곡시켰다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장품들은 일본이 가져갔고요 ^^)

이러한 일제에 의한 고려장에 대한 왜곡된 세뇌교육 결과는 '병든 장인을 고려장한 사위'라는 제목의 1934년 6월 9일자 조선중앙일보 기사, '유아를 고려장'이라는 제목의 1936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8. 조작된 고려장 이야기가 가진 문제점

저자인 김종서 박사는 '불효'의 정당화라는 측면에서 말을 합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고려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점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 문화'의 제 3장 '자랑스러운 한국의 한국 고유문화'는 김종서 박사의 신시단군조선사 연구,

단군조선영토연구, 기자위만조선연구, 한사군의 실제위치 연구, 부여고구려백제사연구, 대학강의 노트,

단군왕검과 왕검성에 대한 신고찰 등의 내용을 발췌하거나 참고한 것이라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 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배우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에 대해 쓰고 싶지만....

질문이 고려장에 대한 것이고, 내용이 길어지니 이만 마치겠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

 

이상. 지식 게시판 답변으로 쓴 것.

 

by 龍淵 | 2008/05/27 17:03 | 역사바로잡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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